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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이씨(驪州李氏) 고령입향조 고양군 휘 헌(憲) 현창비(顯彰碑)
성명 : 이동훈 (ldh5303) [ldh5303@naver.com] 입력일시 : 2018-03-04 20:46:48 조회 : 244 

 

의 본관本貫은 여주驪州이며 휘는 헌이고 자는 여징汝徵이다. 공은 황중윤皇中尹을 지낸 시조 휘 은백殷伯5세손이다. 증조曾祖의 휘는 윤수允綏이니 호부낭중戶部郎中이요 조의 휘는 규보奎報이니 진정표陳情表로써 몽고군을 격퇴하여 이문화국以文華國의 이상을 실현하였던 고려 최고 문장가이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치사致仕하셨으며 시호諡號는 문순文順이고 하음백河陰伯에 봉군封君되었다. 의 휘는 징이요 청현직淸顯職인 사간司諫을 지냈다 비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니 좌사간左司諫 의 따님이다. 공은 고려 고종 441257년에 태어나셔서 충렬왕 3127721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재임 중 함주 차유령車踰嶺에서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한 전공戰功으로 고양군高陽君에 봉군되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와 동평장사同平章事에 올랐다. 충선왕 21310년경 개경 동부 봉향리에서 식읍지食邑地인 고양高陽 즉 고령에 시거始居하여 입향조入鄕祖가 되셨고 이에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여주驪州에서 분적分籍하여 고령高靈으로 하였으며 고령이씨高靈李氏 득관조得貫祖가 되셨다. 조선 고종 171880년 예조禮曹 완문完文에 의거 여주驪州로 환관還貫하기전까지 고령이씨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공은 충숙왕 61319년 향년 63세로 고종考終하시었다. 는 강릉김씨江陵金氏 이부상서吏部尙書 의 따님이다. 묘는 실전失傳되어 설단設壇하였다. 의 휘는 언이니 홍건적紅巾賊을 평정平定한 전공으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고 여는 검교흥위위대장군檢校興威衛大將軍 박지순朴之順에게 출가出嫁하였다. 손자 안동장군安東將軍 휘 미숭美崇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인門人으로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획책劃策한 이성계李成桂의 불의不義에 항거하여 해를 꿰뚫는 충성과 하늘을 떠받치는 절개로 고려高麗를 부흥復興시키기 위해 충의군忠義軍을 일으켜 니산, 덕대산, 운라산성, 상원산 등지에서 항전抗戰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사殉死하자 후인들이 미숭신사美崇神祠를 세워 정충대절精忠大節을 숭앙崇仰하였다. 증손 휘 천을天乙은 호랑이가 효성에 감동하여 여막廬幕을 지켜주었던 출천지효出天之孝이었고 5세손 휘 계문啓文은 세한지조歲寒之操를 지킨 은덕군자隱德君子이었으며 휘 신문信文은 방촌厖村 황희黃喜의 문인으로 사마시司馬試에 입격入格한 후 죽계정사竹溪精舍를 세워 후진양성에 힘썼던 고사高士이었다. 7세손 휘 광영光榮2차례 단지진혈斷指進血9년간 여묘廬墓로 복호復戶되었고 9세손 경령景齡과 천령千齡은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수문장겸사복시정守門將兼司僕寺正과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제수除授받았다. 11세손 휘 중립中立과 휘 성립誠立 형제는 선조 361603년 식년 문과에 동방급제同榜及第하여 형조좌랑刑曹佐郞과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지냈다. 11세손 휘 적은 음보蔭補로써 종사랑從仕郞을 지냈고 휘 민일民逸은 호군護軍에 올랐으며 18세손 휘 봉조鳳朝는 고령군수 서리를 지낸 후 고령지역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고 우신학교又新學校를 설립하였으며 사재私財로 수백명의 이재민을 구휼救恤하고 고령향교 문묘文廟 등을 중수重修하는 등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19세손 휘 영세榮世는 돈영부도정敦寧府都正에 올랐으며 20세손 휘 한필漢弼은 근선보인勤善輔仁을 실천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에 증직贈職되었고 그 아들 21세손 휘 석관碩瓘은 시종원 좌시어를 거쳐 흥해군수를 지냈다. ·현대에 이르러 관계에서는 19세손 용수龍洙가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고 20세손 휘 홍직洪直은 고령군수를 지냈으며 21세손 하룡河龍은 청와대 공보비서관과 시애틀 총영사을 역임하였고 규문圭文은 경무관에 올랐으며 23세손 휘 용섭龍燮은 문경군수를 지냈고 상훈相勳은 조달청중앙보급창장에 올랐으며 25세손 규효圭孝는 내무부차관을 거쳐 건설부장관을 역임하였다. 학계에서는 21세손 상윤相潤이 중앙대 부총장을 지냈고 22세손 순탁舜鐸은 세계적인 석학碩學으로 2015년 세계물포럼 운영위원장 및 영남대 최초 석좌교수를 역임하였으며 23세손 휘 성열成烈은 성균관대 부총장을 지냈고 그밖에 20세손 우필禹弼3.1 만세운동으로 순국殉國한 애국지사이고 21세손 대호大浩는 위선사爲先事 공로자功勞者이며 21세손 영희英姬는 최초 여성 고령군의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외손 허태열許泰烈은 충북지사,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였으며 김대환金大煥은 노동부장관을 지내는 등 동량지재棟梁之材가 속출續出하고 있다. 공의 위적偉蹟이 후세에 민멸泯滅될까 700여년간 통한痛恨의 세월을 보내던 중 22세손 순탁舜鐸이 현창비顯彰碑를 근수謹竪하여 선조의 빛나는 공적功績을 밝고 환하게 세상에 드러내니 가문의 경복慶福일세. 이에 명하노니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숭조돈종崇祖敦宗의 정신이 면면이 이어지고 조상들의 음덕蔭德과 지령地靈이 감응感應되어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번성繁盛하고 경복慶福이 있기를 기원하노라.

 

201851922세손 고양군후예 대종중 회장 동훈東勳 근찬

수정: 2018-03-16 21: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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