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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史-여사와 女士-여사
성명 : 이인환 (ihlee4441) [ihlee4441@hanmail.net] 입력일시 : 2018-04-16 10:24:12 조회 : 59 
女史-여사와 女士-여사
 
女史여사라는 말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후궁을 섬기어 기록과
문서를 맡아보던 여관女官을 말했다.
이것이 나중에는 황제나 왕과 동침할 비빈들의 순서를
정해주는 일로 확대되었다. 여사女史는 비빈들에게 금· ·
등으로 만든 반지를 끼게 하여 황제나 왕을 모실 순서를 정했고,
생리 중인 여성은 양 볼에 붉은색을 칠하게 하는 등
비빈들의 건강 상태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실질적인 궁중 권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고위 관료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가,
요즘에는 흔히 남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한편 女士여사라는 용어는 고대 중국의 시경詩經’, ’대아大雅‘, ‘생민지십生民之什’,
기취旣醉편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주석註釋을 보면, "여사는 여자로서 사행士行
있는 자"라고 적고 있다. 기원전부터 여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으로 여사, 여성 선비 용례가 나타나는 것은 세종조이다.
친족을 잘 보살피고 가정을 다스림에 항상 자비롭고 화목한 생각이 간절하였고,
홀몸이 되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절개를 지킨", 신안택주信安宅主를 여사라고 칭하고 있다.
 
사행士行의 내역은 여성 신분에 따라 달랐다는 점이 주목된다.
왕비, 대비, 왕대비 등의 왕실 여성에 대해서는 수렴청정의 다스림(治人)을 강조하고,
그 외에는 "와 예를 행하는 훌륭한 여사로 내치內治를 다하였다."는 말과
"지위가 높다고 해서 분노의 기색을 아랫사람에게 드러내지 않고
21년 동안 궁정에서 나쁘게 평가하는 말이 없었다."고 하여
모범적인 행실을 칭찬하고 있다.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에 대해서는 "청렴한 명성과 곧은 절개",
"남편이 죽고 장사를 지낸 뒤에 가사를 처리하고 의연히 자결",
"남편이 참화를 당하자 마침내 자살" 등 수절, 절개의 사례로 여사를 칭하고 있다.
심지어 14살짜리를 여사로 칭한 사례에서도 "추악하게 무함하는 정신병자의 말을
한 번 듣고 자살하여 절개를 지켰다."고 하였다.
이 점이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에 나타나는 여사 용례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즉 여성의 신분에 따라 사행士行의 내역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사란 표현은 내용적으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 와서도 이러한 표현들이 문집 등에 나타나고 있다.
여사로 평가되는 여성들의 덕목을 보면, 예와 법칙에 맞는 바른 생활,
정절과 순절, 효도와 공경, 내조와 근검절약 등을 거론하고 있다.
당시 유행했던 여성들의 책 읽기와 글쓰기 열풍에 힘입어
여성도 점차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여성 중에는 언문을 넘어서 한문을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지식과 학문을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생활 세계와 사회에 대해서
독자적인 의식을 가지고 학문 세계를 구축해서 시문집을 남긴 여성도 있었다.
예컨대 개인 문집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를 남긴 임윤지당任允摯堂,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를 남긴 남의유당南意幽堂,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이사주당李師朱堂,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남긴 이빙허각李憑虛閣, 등등은
시문을 넘어서 유교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던 지식인 여성들이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여사와는 다소 구별된다.
  
코멘트 보기
이인환 (ihlee4441)     2018-04-17 07:50:37        

어느 대통령 부인의 호칭이 '영부인令夫人' 자격이 있니 없니,
지금 대통령 부인은 이와 유별해 그냥' 여사'로 부르기로 했니,
이북 '리설주'를 여사로 불러주기로 했니 등등...
무슨 왕조시대 내명부 품계와 대전을 정함도 아닌데 말도 많다.
이에 관련해 상기 '女史'와 '女士'의 어휘 생성,
발전 과정을 보면 꽤나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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