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OME로그인회원가입공지사항
HOME > 사랑방 > 자유게시판
 
글번호 : 999 
늦봄 초여름 사이
성명 : 이인환 (ihlee4441) [ihlee4441@hanmail.net] 입력일시 : 2018-04-20 09:12:37 조회 : 156 
늦봄 초여름 사이 (옛날 이바구- 8)




우수 경칩 지나 제법 상긋해진 봄내음에 나물바구니 든

동네 처자들의 댕기머리에도 아사란 봄바람이 와 살랑거린다.

이어 청명 곡우 지나 늦봄 나른한 삼사월 춘궁기를 지날 때면

녹음방초 우거져 산과 들에 파아란 오뉴월이 성큼 다가와 우리들 마음도 더욱 푸르고,

모내기하기 위해 물 거늑하게 실어 놓은 무논에

신선한 바람이 쏴 불어 수면을 간지르며 지나가고

그 위로 날 샌 제비 한 쌍 가끔씩 저공비행으로 나는데,

흰 구름 그림자는 물속으로 아스라이 스쳐간다.

  

이 때면 우리 뻘다이들은 오동나무 깎아 돛단배를 만들어 띄웠지.

뽀얏게 통통한 오동나무 잘라 예리한 칼로 베어

이물 쪽은 날씬한 유선형으로 다듬고

고물 쪽에는 납작한 키를 달아 붙이고

한가운데는 움퍽 파 선복을 만들고

그 가운데 대나무 돛대를 깎아 세우고

참종이에 촛칠하여 돛을 달면 돛배가 다 된 거지.

 

다들 바람을 등지고 논두렁에서 돛배를 띄우면,

어떤 것은 쏜살같이, 어떤 것은 둥실둥실,

그리고 어떤 놈은 잘 가다가도 어디에 걸려 꼼짝도 않지.

몇 번이고 배 띄우기 경주한다 고함치며 논두렁을 뛰어다니고 나면,

논두렁엔 빤질빤질한 길이 나 있고

바짓가랑이는 흙탕물에 젖었는데

한 놈은 고무신 한 짝 어딧는 줄도 모르고

해 그림자 무논에 드리우면

모두들 집집마다의 굴뚝에 흰 연기 나는

제 보금자리로 찾아들 갔지요.

 

비 온 다음날 도랑에 물이 제법 차

물 흐르는 소리 조용한 동네 오후의 적막을 깨고,

대소꾸리 받혀 잡고 차디찬 도랑물에 수그리고 버텨 서면

한 놈은 도랑 위쪽에서 풀 섶 샅샅이 발질하며 고기떼를 몰아오지.

송사리 붕어 피라미 미꾸라지 올챙이 소금쟁이 물방개 개구리...

소꾸리 들어 올릴 때마다 퍼덕거리는 고놈들을 잡는 재미에 미쳐

도랑 전체를 다 헤매 뿌연 도랑물로 만들어 놓았지.

 

소주병에 송사리 미꾸라지 넣는 놈

제법 큰 호리병에 붕어 피라미 넣는 놈

병 준비에 따라 여러 가지지만,

한번은 무슨 질라이라고 점방에 가서

과자 넣는 커다란 유리 항아리를 구해거기에 붕어와 피라미를 서너 마리씩 넣어

내 앉은뱅이책상 위에 차려 놓고, 며칠인가 고놈들 노는 것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학교 숙제했던 것을 추억하니 꼭 엊그제 만 같아.

 

산이나 들에 나가면 새파란 망개가 다닥다닥 열렸고

빨간 줄딸기 나무딸기 열려 신나서 맛나게 따먹고

동네 마담에 둘러앉아 풋망개 풀 마디 꺾어 끼워 안경 모형 만들어 쓰고

한참 후면 감꽃 실에 끼워 목걸이도 만들어 걸고

샛대풀 마디마디 꺾어 한줌씩 쥐고 맨바닥에 놓아 흩어지면

옆에 것 건드리지 않고 한 개씩 뽑아 모으기 하는 놀이도 하고 놀았지.

 

옆에서 촉새 같은 한 놈 망개이파리 입에 갖다 대고 멋지게 한 곡조 피리 부는데,

싱기비 같은 놈 옆에서 되레 버들피리 중저음으로 훼방을 놓고

저쪽 아래서는 조막디이 만한 애들이 맨땅에 줄긋고 꼰 놀이를 하며

먼데 간혹 소 모는 소리에 바로 내 옆 물가에서 우는

물총새 소리와 함께 들리는 그 시절 그때 쯤,

옛날 우리 동네의 하루도 뉘엿뉘엿 저물어 갔었지.

 

로그인 하시오
 

footer image